우리의 漢詩

실버들 천만사

hellofine 2012. 9. 28. 08:02

 

실버들 천만사

실버들을 천만사 늘어놓고

가는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외로움이 아무리 아쉽다기로

돌아서는 님이야 어이 잡으랴

 

한갖되이 실버들이 바람에 늙고

이내몸은 시름에 혼자 여위네

 

가을바람에 풀벌레 슬피울때에

외로운 밤에 그대도 잠못 이루리

 

김소월의 이 시는 그대로 한 편의 한시다.

기승전결로 시의 품새를 잡은 것도 그렇고,

실버들 천만사에서 우러나는 정서도 그렇다.

 

한자는 한 글자가 하나의 의미를 담고있는 동사가 많다.

그래서 동음이의 글자를 이용해서 유희를 즐기기도 한다.

예를 들면 '복 福'자를 뒤집어 두고 복이 오기를 기원하는 것 같은...

(뒤집는 것도 한자로 '도 倒'이고 오는 것도 '도 到'다)

 

실버들이 사랑의 마음을 전달하는 도구가 된 것은,

버들 류 柳의 음이 머물 留의 음과 같아서이다.

버들을 전해주는 마음에는 '내 곁에 있어 주'하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이다.

물 한 바가지에 버들잎 띄워주었단 이야기가,

의도를 잘 읽는다면 그래서 진한 프로포즈가 될 수도 있는 일.

 

실버들이 '천만사'도 마찬가지다.

천만 가닥의 '실 사 絲'자를 '생각 사 思'자로 쌍관의를 활용한 것이다.

실버들이 천만 가닥 늘어진 모습은,

당신 생각이 가득한 내 마음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겉으로는 <자연물>을, 그 광경을 그려내면서,

속마음을 은근히 넌지시 드러내는 것이 동양 미학의 은근의 아름다움이다.

한시의 이런 선경후정의 아름다움은 일본의 하이쿠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바라보는 일 觀, 그것을 통해서 자연의 이치가 마음 연못에 비치게 되는 照,

이런 일을 관조라고 하였다.

 

맑은 새벽 목욕을 겨우 마치고

거울 앞 힘에 겨워 몸 못 가누네.

천연스레 너무나 고운 그 모습

단장하지 않았을 제 더욱 어여뻐.- 최해崔瀣, 「풍하風荷」

 

淸晨纔罷浴(청신재파욕) 臨鏡力不持(임경역부지)

天然無限美(천연무한미) 摠在未粧時(총재미장시)

 

소담스레 솟아오른 수련을 보고, 이런 마음을 드러낼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의 글을 읽는 일만으로도 헌감스런 일이다.

바람이 일자 흔들리는 연꽃.

그 비록 탁한 물에 뿌리를 드리웠지만, 그 꽃의 아름다움은 부처님의 세계다.

 

송나라 주돈이는 「애련설(愛蓮說)」에서

 

"나는 홀로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으나 물들지 아니하고,

맑은 잔물결에 씻기어도 요염치 아니하며,

속은 비었고 겉은 곧으며,

덩굴 치지 않고 가지 치지 아니하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하고 깨끗이 심어져 있어 멀리서 볼 수는 있어도

가까이에서 함부로 할 수는 없음을 사랑한다."

 

고 연꽃 애호의 변을 이야기한 바 있다.

이 가운데 '향원익청(香遠益淸)'이란 말은,

더욱 사랑을 받아 군자의 우정을 이야기할 때 많이 쓴다.

가까이 있을 땐 모르다가,

멀리 떨어지면 그 향기가 더욱 맑게 느껴지는 그런 사람,

무심한 듯 따뜻한 그런 손길. 연꽃은 그런 꽃이다.

 

- 정민의 한시 해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