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代중국이 낙후된 근원
근대 중국이 낙후된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중공 교과서에서는 이를 “서구 열강의 약탈과 괴롭힘”때문이라고 귀결해 놓았다.
물론, 19세기 서구 열강들이 중국을 침략해 중국 국민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가져다준 것은 맞다. 그러나 외부 세력이 중국을 낙후하게 만든 결정적 요소가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같은 시기에 유사한 처지에 있었기 때문인데 예를 들면 일본이 그렇다.
19세기 말, 일본은 ‘메이지明治유신’을 추진해 황권의 개명開明과 지지로 변법變法(즉‘정치개혁’)에 성공했다. 일본은 입헌군주를 실현하고 국회를 건립했으며 선거를 실행하고 쇄국정책을 끝내 현대 국가의 행렬에 진입했다. 같은 시기에 중국은‘무술변법戊戌變法’을 추진하다 황권 중 보수파(서태후 등)의 간섭과 압제로 변법에 실패했다. 중국은 계속 봉건 전제專制의 수렁에 빠져들었고 겨우 경제 개혁(즉‘양무운동’)만 유지했다.
어떤 사람은“낙후하면 공격당하기 마련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을 비교해 보면 이에 대한 반증이 된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양무운동’을 거치며 국력이 크게 증가해 당시 해군(북양 수군) 군사력은 아시아 1위, 세계 4위에 속했다. 그러나 이후 발생한 ‘갑오해전甲午海戰’에서 상대적으로 강력한 중국 해군은 일본 해군과의 결전에서 몰살 당했다. 뛰어난 전함이나 함포(하드웨어)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제도와 인심人心(소프트웨어)이 변하지 않으면 표면적인 부강은 빈약을 감추는 가면에 불과할 뿐이다.
중국 민중들은 번영과 부강을 갈망하지만 역사는 다시 한 번 국민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번영과 부강이 꼭 중국을 구할 수 있는 것는 아니라고. 번영과 부강은 나라를 구하는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필경, ‘문경文景의 치(서한 초기 문제와 경제가 통치하던 시기)’, ‘정관貞觀의 치(당 태종이 통치하던 시기)’에서 ‘강건康乾의 치(청나라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가 통치하던 시기)’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번영과 부강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효율적으로 정치를 감독하고 제어할 메커니즘을 수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진적인 제도와 찬란하게 빛나는 인심이 없었다. 일시적인 번영과 부강은 모두 구름처럼 사라져버렸다.
근대 중국이 낙후한 근원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었다. 바로 케케묵은 제도와 관리들의 부패, 정부의 우둔함에 있었다. 20세기 후반, 중국과 세계 선진국들과의 차이가 더욱 커진 근본적인 이유는 내부에 있었다. 중공은 제멋대로 독재하고 정치적인 광기를 선동해 적색 테러리즘을 만들었다. 그 결과 건설은 황폐해지고 생산은 파괴되었으며 중국은 더욱 뒷걸음질치고 낙후되었다. 이런 상황은 중국 역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오늘날 중공은 외국 투자와 무역에 의지해 중국 경제의 표면적 번영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썩은 제도와 관리들의 부패는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정신 등 종합적인 지표로 놓고 말할 때 중국과 세계 선진국들을 비교하면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처럼 그 낙후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진파공(陳破空) 중국문제전문가/자유아시아방송(RFA) 특약 논설위원
2011.02.2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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