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半島山河」을 말하다/대담·좌담
筆者 : 岸曙 金億, 月灘 朴種和, 春城 盧子泳, 秋湖 田榮澤, 파인 金東煥
(타임머신을 타고 1939년 當代의 有名한 詩客들의 座談을 들어보는 즐거움을 맛본다)
꽃 피는 春3月부터 詩客으로 더불어 半島山河의 風光을 말하기로 하다. 窓外에 九十春光 무르녹는 소리를 고요히 들으면서...<78>
진달래 핀 藥山東臺
- 金東煥
세월이 덧없어 어느덧 春三月이라, 진달래꽃 피고 노고지리 우지지는 이 좋은 시절을 當하매 저절로 좋은 산천 두루 찾아 詩도 읊고 노래도 부르고 싶습니다 그려, 그러기에 이제 이 땅 詩人墨客 여러분을 한자리에 모시고 半島의 絶勝景槪를 찾기로 하겠습니다.
봄에도 春三月, 가장 먼저 피는 꽃은 진달래요, 그 진달래로는 寧邊에 藥山東臺가 몹시 유명하지요, 그러기에 賞春詩筵의 맨 첫머리에 이 藥山東臺 진달래 꽃 구경부터 나서기로 합시다. 岸曙兄, 언젠가 寧邊가섰다가 詩 읊은 것이 있지 않았어요?
- 岸曙 金億
藥山東臺 참으로 거 좋지요, 이른 봄 아지랑이가 西道山川을, 마치 신부의 얼굴에 옅고 부드러운 면사포로 가리듯이 꿈결같이 고요히 가릴 적에 寧邊의 그 藥山東臺에는 연분홍 진달래가 한 벌 쭉- 피어 깔리지요, 너무 야드러지게 붉지도 않고 그렇다고 멋없이 희지도 않은 朱黛를 띤 연분홍 진달래가 山 허리를 타고 이리저리 물결쳐 흐른 것이 참으로 가관이어요.
平安道 고향을 떠나 길손이 된지 하도 오래서 지금 고향 산천의 기억은 까마득하지만 그 어느샌가 한번 발 드디어 본 이 藥山東臺의 진달래 꽃 경치만은 잊혀 질 길 없어요. 3, 4년 전 어느 春三月에 安東縣 갔다 오던 길에 잠간 들었더니 진달래가 한창 피였는데 그 절경이란 예나 지금이나 역시 좋더군요. 그 길로 돌아서 노래 한 首 읊은 것이 있지요. 외어 볼까요.
1. 藥山東臺 가고지고 藥山東臺 어듸메냐.
하늘 끝엔 구름이요 구름 끝은 虛空이다.
야즈라진 바위에 외진달내 연분홍은
봄바람을 못내 반겨 하늘하늘 춤을 추리.
아하 꿈에 선한 내 東臺의 지금은 엇더런고.
2. 藥山東臺 가고지고<79> 藥山東臺 어듸메냐.
하늘 끝엔 구름이요 구름 끝은 虛空이다.
鶴歸岩엔 鶴이 올가 기둘는지 오래건만
들비듥이 짝 찻노라 구개구개 넘어들리.
아하 꿈에 선한 내 東臺의 지금은 엇더런고.
3. 藥山東臺 가고지고 藥山東臺 어듸메냐.
하늘 끝엔 구름이요 구름 끝은 虛空이다.
九龍江의 여튼 물엔 나무배도 간 데 업고
해가 지자 돗는 달에 힌 물살만 소삭이리.
아하 꿈에 선한 내 東臺의 지금은 엇더런고.
- 金東煥
좋구먼요, 아마 平安道나 黃海道 친구들은 대개 보셨을 걸요. 春城, 가셨댓서요?
- 春城 盧子泳
나도 민요에서 듣고 가고파 가고파 하고 몹시 憧憬해 오다가 年前에 동무들과 더불어 寧邊에 놀러 갔지요. 藥山東臺는 진실로 西關의 名勝地입디다. 邑 바로 앞산이 하늘에 우뚝 솟은 東臺지요. 그 東臺란 山 꼭대기에 있는 絶壁山頂인데 그 위에는 커다란 너래 방석이 놓여 있고 그 방석에는,
『大陸群山沒 長空一帶來 天下臺名臺 人間無比石 』
이란 漢詩 한 줄이 새겨 있더군요. 이 層岩絶壁을 중심으로 그 아래 左右에 진달래가 쪽-깔렸어요. 몇 천 송이 몇 만 송이인지 모르지요. 옛날 어느 守領의 외딸이 이 東臺에 올라 놀다가 失足하여 떨어져 죽었는데 그 즉시 새빨간 진달래가 되었다고 古老들이 이야기 하더군요. 그 東臺 아래에는 九龍江이란 맑은 강물이 양양이 흘러가는데 바람이 으스스 하고 지나가면 진하게 피었든 꽃들이 떨어져 강물 위에 떠내려가는 것이 정말 滿溪流水 泛花來格이더군요. 나도 흥겨워 두어 절 불러 보았지요.
東臺에 오를랴니
꽃을 밟고 <80>
꽃을 았기니
東臺에 내 못올으네
에헤야 에헤야
東臺...東臺...
東臺에 불이 타네
빨간꽃 불이 타네
東臺에 올으랴니
꽃을 밟고
꽃이 았가워 東臺에
내 못오르네
藥山의 고흔 님이
九龍山에 잠들었네
별들도 有心하야
순*어 바라거니
고흔 밤 아름다운 꿈을
길이 깨지 말고저
- 秋湖 田榮澤
藥山東臺를 두고 지은 漢詩도 많은 모양이더군요. 新詩로는 素月의 詩 좋았지요. 素月이는 그 나근나근하고 부드러운 민요조를 가지고 진달래를 못 견디게 그리웁게 읊었었지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寧邊에 藥山
진달내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거름 거름
놓인 그 꽃을
삽분히 드려 밟고 가시옵소서
- 月灘 朴鍾和
참으로 좋구먼요. 스무 나무 젊은 철에 素月은 제 정열을 이 한 首에 모다 쏟아 놓았지요.
- 金東煥
月灘, 寧邊 가보셨어요?
- 朴種和
가보진 못했어요. 언제든 한 번 가 보려구는 생각해요. 가보았던들 나도 한 두 절 읊었을 것을 어찌했던 옛날부터 흘러오던 「藥上東台」란 그 민요가 좋아요. 아주 朝鮮 情調를 숨 막힐 듯이 담았었지요. 西道山川의 향기는 그 一篇에 듬씬 풍겨져 있어요.
- 金東煥
나도 보지는 못했지만 그 맛은 느낄 수 있어서 이렇게 불러 본 적 있지요. 이번 京釜線 車中서 우연히<81> 불러 보았어요.
春三月
이른 꽃은
영변에 진달내라
얼는 피어
얼는 지니
두고 두고, 았가워라
핀 날부터
샛빨가니
西道 閣氏 붓그려라
영변에 진달내야
피긴 피되
더러는, 더듸 피든 못하든가.
- 月灘
진달래 철에 西道 각시들이 花煎놀이 하는가요.
- 秋湖
하지요. 아마 그것이 4월 초파일 전후가 될 걸요. 새 옷 갈아입은 젊은 처자들이 세넷씩 패를 지어 바위 아래서 떡 지지며 花煎놀이 하지요. 노래도 부르고....
- 月灘
그 노래란 그 옛 민요들인가요.
- 春城
설마, 시집도 안 간 색시들이 그렇게 風流엣 소리야 수줍어서 하려고! 그러나 무언가 가냘프게 길게 빼는 구슬픈 노래를 고은 목청으로 부르더군요. 그 花煎 지질 때 여기저기서 한 가닥의 떡 굽는 연기가 기어오르는데 그 수풀 속에 붉게 보이는 것이 꽃이 아니면 각시들 분홍치마요. 그 중에도 진한 것은 분홍댕기요. 노랑 갓신에 빨간 댕기 들인 젊은 처자의 모양을 보면 쓰러졌던 옛 情調를 여기서 찾는구나 하며 어떻게 기쁜 줄 모르겠어요.
- 파인
西道의 진달래는 서울보다 얼마나 늦게 펴요.
- 岸曙
한 보름 늦을까요. 양지쪽의 것은 거지반 서울과 같을 걸요.
綾羅島의 수양버들
- 金東煥
藥山 東臺에 꽃 질 무렵 되면 그제는 平壤 大同江, 綾羅島 섬가에 초록색 수양버들이 늘어지지요. 이제는 그 綾羅島의 수양버들을 찾기로 합시다.<82> 柳絮는 언제 날리는가요.
- 月灘
暮春初夏之節이지요. 江南의 蘇杭州서는 早春 3, 4月이라 했으나, 朝鮮은 아마 5월경 일걸요. 그 잡힐 듯 말 듯 바름에 가볍게 날려 흐르는 柳絮는 참으로 마음을 끌어요.
- 金東煥
春園 말씀을 들으면 吉林도 버들이 많더래요. 그래서 봄철 되면 柳絮가 날러 松花江 一帶에 떨어지는 것이 마치 大同江 물 우에 綾羅島의 버들개지가 흐르듯 하더래요.
- 秋湖
吉林은 북방인데 게도 수양버들이 그렇게 많이 있을까요, 아무튼 나는 平壤은 옛날 島山께서 校長철에 大成學校에 다닐 적인데 浮碧樓 높은 다락에 학생들과 함께 올라서 바라다보면 푸른 강물 위로 양털 같은 솜 송이가 흩어지는 것이 참으로 좋더군요. 그때 철에는 綾羅島 뿐 아니라 練光亭에서부터 저 멀리 浮碧樓 올라가는 데까지 大同江변에 버드나무가 쭉 늘어서 있지요. 그렇게 멋이 있더니 지금에 가보면 楊柳는 綾羅島 外에야 어디 있더라고 빨리 자라나기로 유명하고 싱겁기로 유명한 아까시야 나무뿐이지.
- 春城
蘇東坡가 坑州刺使되듯 이제 月灘이나 岸曙가 平壤府尹이 되어 갔더라면 예전 같이 大同江에 수양버들을 심을 터인데 官吏에 詩를 解하는 이가 있어야지. 하하 (一同笑)
- 岸曙
그야 간다면 楊柳 심어 옛 風趣를 살리고 오지요... 그런데 秋湖 말 같이 참으로 예전에는 平壤에 수양버들이 많았어요. 江岸을 파-랗게 덮었었으니까 지금에야 練光亭 근방에 몇 그루 남았을까 참으로 아까운 일이지요. 아까운 일을 말하자면 淸流壁도 예전에는 겨우 한 두 사람이 지나다닐만하게 오솔길이 놓였을 뿐이었지요. 그래서 한 쪽은 千仞絶壁이요 한 쪽은 양양한 물결이 바로 발아래에 출렁출렁 흘러 지나서 그 멋이란 참으로 그럴듯했었지만 지금은 바위를 깎아 내리어 자동차까지 다니게 되고 江岸엔 수양버들은 다 없어지고 싱거운 장승 같은 아까시야 나무가 서고... 다른 데는 모르나 大同江가에 가보면 桑田碧海란 말이 생각납니다.
- 파인
주요한君 詩「불노리」를 보면 大同江 絶景은 楊州千絲未繫人이란 능라도 실버들 풍치보다 5월 端午의 불놀이가 더 좋더군요.
- 春城
『불노리』一篇은 그 사람 쓴 것 중에도 가장 뛰어나요. 그 정열, 그 향기, 두세 번 읽어도 싫지 않아요.
- 月灘
잘 썼어요. 잘 썼어요. 잘 썼어요.「저녁 하늘에<83>花砲가 터진다. 터진다. 쓰러져 가는 분홍빛 놀... 하는 調로 맑고도 뜨겁게 西道男兒의 氣質과 江月풍경을 잘도 그렸지요. 그런데 平壤 불놀이란 5월 端午- 가 4월 패일인가요.
- 岸曙
4월 패일 같아. 부처님 나신 날에 平壤城中 백성들이 모다 들 끌어 나와 찬讚佛하는 것이 뜻에 맞을 것 같아 암만 해도...
- 春城
端午명절을 開城이나 定州, 義州 등 西道에서 가장 잘 노는 것으로 보아선 平壤 불놀이도 5월 端午놀이 같고요.
- 秋湖
그래요 5월 端午놀이가 옳은 듯해요. 그러나 불놀이도 甲午役 전후에 벌서 없어졌다니까 東仁이나 요한이나 다 평양 지면서도 못 보았다니까. 그런 걸 보면 아마 30년 前에 벌써 없어진 놀이 같아요.
- 파인
불놀이를 어떻게 해요? 횃불이라니 오늘날의 花砲(花火)가 아닌가요.
- 岸曙
아니지요. 까만 밤중에 여러 數十隻 여러 數百隻의 배를 강물에 띠우지요. 20만 市民은 집을 모다 비우고 나와선 더러는 배 타고 더러는 강가나 鐵橋 우에서 구경하고 배라니 그것은 ヤンタ(船 尾形船) 비슷한 지붕을 씌운 집배(屋船)인데, 볏짚으로 화토 불을 하여서 江中腹에 이르렀을 때 하늘 공중 높이 뿌리기도 하고 강물 우에 던지기도 하고... 그러니까 여러 億十萬 별들이 하늘에 날듯이 까만 밤중에 불꽃이 요란스럽게 「호화찬란하게 나르지요」지금도 七星門 근방의 古老들에게서 들르면 어지간하였던 모양이었더군요.
- 파인
불놀이도 그렇거니와 鞦韆도 平壤이 유명하지 않아요?
- 秋湖
추천(鞦韆)은 저 關岳廟 앞 七星門 뒤에서 箕子陵 오르는 잔디벌판에서 하였지요. 지금도 추석이나 단오명절에 하는 모양이나 前만 못하더군.
- 파인
文人으로 平壤 情調를 살린 사람이 누구일까요.
- 月灘
東仁의 「배따라기」, 요한의「불노리」, 岸曙의 「레코-드 俗謠」의 능라도 春城-春園의 「無情」속 영채, 桂月香이, 패성학교 학생, 이 모든 사람이 모다 平壤을 로-맨스의 都城, 꿈의 都城, 그리운 都城으로 만들어 내었지요.
- 岸曙
秋湖도 소설「紅蓮, 白蓮」의 무대를 平壤에 찾았지요. 워낙 名妓 桂月香으로 멋은 부릴대로 부릴대로 다 부쳤거니와...
- 파인
平壤을 어떻게 생각해요.
- 月灘
雄壯치는 못하지. 큰집 정원 같은 세공품이지. 高句麗의 氣慨는 저 遼東벌 鳳凰城 같은 큰 벌판에<84> 大都城을 싸울 때에 있었지. 平壤에 와서야 그 氣宇가 도로 줄어버렸지 그저 風光 아름다운 山村水廓이 平壤이지요.
- 春城
그렇지요. 대체로 곱고 아름다운 베니스 같은 로-맨스의 都會로 피어졌지요.
明沙十里와 天安三巨里
- 파인
暮春初夏의 綾羅島 수양버들을 보았으니, 이제는 三伏間 정열의 꽃이 피는 元山 明沙十里의 海棠花를 보기로 합시다. 明沙十里는 모다 보셨을걸요.
- 春城
明沙十里라면 그 민요가 좋아요.
明沙十里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설워를 마라
明年 춘삼월이 오면
다시 피어 맛나리라
얼마나 멋져요. 곡조가 슬슬 제 멋에 흐르게 되고 이러니 여러 백년 사이에 여러 만 명이 부르게 되었고, 우리도 이렇게 소박하고 운치 있는 노래를 짓고 싶어요.
- 岸曙
春城뿐 아니라 다 좋아하는 노래지.
- 月灘
조선에「명사십리」와 「영변가」와「天安三巨里」의 세 가지 노래는 정말 살았어요. 흙의 향기를 담은 그야말로 값진 民謠들이엇지요. 누가 지은 줄도 모르게 백성이 다 부르는 노래들이지요.
- 파인
「明沙十里」는 韓龍雲씨가 紀行을 썼고 또 노래 부른 것이 있었고, 金珖燮君이 明沙十里에 해당화 없더라고 慨嘆하였고.
- 岸曙
해당화 있는 줄 알고 찾아 갔다가는 실망하지! 나도 十里長堤에 寧邊에 진달래 피듯 가득 덮였을까 했더니 웬걸 겨우 몇 군데에 그것도 앉은뱅이 소나무 틈에 반조고레 조그맣게 피고 있더구먼 -그러나 많지는 않지만 드문드문 불그레 핀 것이 그게 오히려 마음을 끌어요.
- 春城
해당화 많기로는 黃海道 夢金浦가 좋습디다. 거기는 맑은 細砂로 十里를 連했고 細모래벌에 어떻게도 해당화가 많이 피었는지 앞으로 해당화 명소로는 夢金浦가 될걸요.
- 岸曙
그러나 元山 「明沙十里」의 모래 벌의 그 모래는 참으로 금모래에요. 한줌 가득 쥐어 바다 물속에 해우면<85> 모다 금싸라기인 듯 다 흘러버리고 남는 것이란 없어요. 그 細모새가 참 좋아요.
- 月灘
나도 明沙十里에 가보았는데 운치 있는 서양인 별장이 松林 속에 서고, 바로 東海의 滄浪이 굽실굽실 다가드는 풍경과, 달 싣고 들어오는 一葉片舟라거나 파-란 北方 하늘에 흰 구름이 아무 근심 없는 듯이 흐르는 그 悠久한 풍경들이 좋더군요. 그 속에 해당화가 진홍빛을 자랑하니 一旦 風趣를 더 돕는 데서 아마 해당화 꽃 이라 했겠지. 한 두 송이가 오히려 천만 송이보다 더 나을 법도 있으니까...
- 秋湖
나도 明沙十里 가본 적이 하도 오래서 잘 기억이 안 되나 어쨌든 바다와 산과 갈매기와 꽃과- 이 모든 것이 아주 천연스럽게 잘 조화되어 있었어요. 오밀조밀하지 않게 모다 훨-훨- 개방적이고 남성적이고 대륙적이고.
- 파인
寧邊에 「진달래」와 明沙十里「해당화」의 두 가지 꽃을 여자에 비한다면 어떻게 형용할까요.
- 春城
진달래를 수줍어 수줍어서 외면하고 서있는 시골 색시라 하면 해당화는 기름과 粉과 異性을 다 알고 앉은 都會의 여성과 같은 그런 냄새가 난다 할걸요.
- 岸曙
아니지, 차라리 진달래를 여자라 하면 해당화는 왈가닥, 절가닥하는 사내지요. 팔난봉 녀석이지요. 그 빛깔도 하나는 연분홍, 채 붉지도 채 희지도 않고 하나는 핏빛 같이 어디까지도 진한 색채-그렇지 않을까요.
- 月灘
결단코 안 그렇지. 해당화를 사내에 비긴단 말 안되지. 진달래는 댕기 따 하느린 미혼 童貞요. 해당화는 남의 맛 며느리랄까. 진달래는 연약하나 풍정이 있고 해당화는 억센 듯하면서 정열에 사는 꽃이지. 진달래는 시골 꽃이고 해당화는 서울 꽃이고.
- 秋湖
가여운 그 봄바람조차 진달래는 못 이겨 바람결에 떨어지나 해당화는 바닷바람조차 이겨가며 필 때로 다 피어 제 命에 지는 꽃이니, 진달래를 簿倖處子라면 해당화는 蕩兒의 노리개 같은 娼女라 할까요.
- 파인
다 오른 것 같구만- 수줍어 수줍어서 일부러 바위틈에 가 숨어 피었다가, 열흘도 못 되어 얼른 저버리는 진달래야 가엾은 꽃이지요. 진달래는 향취에 사는 여자요, 해당화는 멋에 사는 여자라 하겠지요. 자아, 인제 해당화를 떠나서 저 민요로 유명한 天安三巨里 능수버들로 찾아 가기로 합시다. 天安三巨里보셨어요?
- 岸曙
이름뿐이지 天安에 능수버들이 인제 없습디다. 그저 빈 風趣없는 거리더군요. 關の五本松 있는<86> 곳이라든지 모두 민요 발상지엔 무언가 자취가 남아있는 법인데, 天安은 멋지던 그 능수버들이 없어요. 돌 碑石거러도 없어요.
- 春城
그래요. 나도 「天安三巨里 흥, 능수버들은 흥」하고 柔軟하게 흐르는 그 민요의 향기에 반해서 늘 한 번 보러 가려다가 정작 年前에 가보았더니 한적한 天安 舊邑이 있을 뿐으로 邑 한가운데 三南大路 가든 곳에 능수버들이 섰었다 하지만 지금은 없어요. 驛馬도 매였겠고 하여 적어도 몇 百年生의 늙은 버들이 가고 오는 봄바람에 흥청거릴 줄 알았더니 버들 그림자도 없습디다.
- 파인
열 아무 그루야 남았겠지.
- 岸曙
한 두 구루나 있었을까. 어쨌든 능수버들의 名所라고는 조금도 생각되지 않아요. 그저 예전 이즈음에 섰었으리란 想像이나 하며 입 속으로 버들타령을 부르고 돌아왔을 뿐이지요.
- 파인
그거 참 슬픈 일이구만. 天安郡守가 風月 모르단건 그럴 법도 하겠지만, 그 곳 청년회나 시인 한 둘만 있었더라도 그렇지는 않았을 터인데! 분하구만.
- 春城
수양버들과 능수버들은 어떻게 다른가요?
- 月灘
南畵에 나오는 것 같은 가지에 또 가지가 뻗어 軟하게 푹-드리운 것이 능수버들이고, 그 양 숙인 것이 수양버들이지, 멋이야 능수버들이 훨씬 더 좋지요. 예전에는 서울 남대문을 나서 楊州, 坡州지나, 全羅道 慶尙道 忠淸道로 내려가는 옛 大路에 天安 舊邑이 있고 그 읍 좌우 쪽에 능수버들이 축 늘어져 三伏 바람에 시름없이 흔들거릴 제 四人轎에 앉아 行軍하는 南原府使요, 全羅監司가 驛馬 멈추고 그 아래 앉아 땀을 식히면서 한나절 풍류를 즐기다 갔을 것을 생각하면 天安三巨里의 멋은 알려지지요. 참으로 좋았을걸요. 그 古典美가...
雁鴨池과 滿月臺
- 金東煥
꽃으로 버들로 유명한 半島의 勝地 3,4處를 들렀으니 이번에는 春草는 年年綠하는 저 古都를 찾기로 합시다. 오늘 저녁 이 좌석의 5,6분이 모다 百濟 扶餘의 皐蘭寺를 보신 이가 한 분도 없다하니 그러면 저 慶州의 雁鴨池를 찾아보기로 합시다. 雁鴨池畔에 서자 어떤 감개가 나옵디까?
-春城
가을에 갔더니 널다란 못에 하늘빛 같이 새파란<87> 못물이 넘칠 듯이 갑있는데 못 가에는 키나 되게 자란 갈대가 우두커니 지켜 섰다가 갈바람 지날 제마다 우시시 떠는 것이 어쩐지 遊子의 창자를 끊습디다. 바로 그 뒤가 臨海殿이란 옛 궁궐의 큰 누각이고 그리고 새로 파 내었다는 옛 王宮趾의 주춧돌 놓였던 데와 花崗石으로 만든 水道管 등 모다 천년 전 문화가 어제 것인 듯 보여 집디다.
가을밤 기러기 날 때 雁鴨池畔에 서서 저 멀리 黃龍寺 있는 데로 풍경소리 뎅그렁 뎅그렁 들려온다면 이 한밤을 참을 수 없어 못가로 거닐며 밤새우고 말걸요.
- 月灘
慶州의 문화야 雁鴨池보다 佛國寺와 石窟庵에 있지. 나는 佛國寺를 보고 놀랬어요. 옛날 僧兵 몇 천 명이 싸웠는지는 몰라도 그 까마득하게 높은 石臺 그 石臺를 쌓은 크고 넙적한 돌, 그 바위 돌들을 어데서 파내왔는지 놀라워요. 지금 그렇게 쌓으려면 어려울걸요.
多寶塔 石燈籠들의 정교한 솜씨, 바로 어제 낮에도 釋迦牟尼 오셨다 간 듯이 그윽한 맛이 도는 大雄殿의 누각과 범종 소리 香불 냄새 참으로 新羅文化가 불교에서 왔다 거니와 이 佛國寺가 祭政一致의 그 當節 문화의 발상지였겠다 하면 저절로 머리가 수구려 지더군요.
石窟庵도 그렇지, 돌을 가지고, 그 가는 눈썹, 그 부드러운 손길을 그린 듯이 삭여놓았으며 그 부처님의 표정의 美, 금시에 귀를 대면 가슴 속에서 심장 치는 소리 뚝뚝뚝 하고 들릴 것 같으며 입술도 방그래 터지면서 하하하 하고 웃음소리 들릴 것 같은 그 표정의 逼眞한 美-여서 우리는 眞과 善과 美를 한꺼번에 다 찾아요. 더구나 東海를 바라서 正面한 그 위치, 庵의 配布, 庵의 結構, 한아 나무랄 것 없어요. 과연 이 千年文化를 가지면 埈及希臘과 어깨를 나란히 하리란 자신이 나지요.
- 파인
그래서 詩 읊은 것 있었지요.
- 月灘
솟아나는 생각을 詩에 托하여 노래 불렀지요.
고흔지고 보살의 손
돌이면서 白魚 같다
新羅 옛 미인이 저러트시 거룩하오.
무롭 꿀어 울 어러만시면
薰香내 높은 훈훈한 살기운
당장 곳 따수할듯 하구나
- 12面觀音菩薩 -
- 파인
雁鴨池도 그러려니와 開城 滿月臺는 어떠합디까.<88>
- 秋湖
開城을 처음 보았을 때는 그 도시의 布置가 도모지 王城 앉았던 자리가 아니고 이 구석 저 구석에 砲臺를 묻어두고 訓練院을 두어 數萬 壯士를 敎練하든 요새지대나 무슨 군사도시 같이 우락부락한 산들이 앞뒤에 빽빽이 서서 그런 곳을 한참 지내가야 滿月臺의 옛 왕궁 터가 보이더군요.
이 滿月臺에 올라 사면을 바라볼 때야 비로소 王都였구나 하게 앞뒤가 탁 터지고 평야도 보이고 합디다. 滿月臺 주춧돌이라거나 논밭 진흙 속에서 발에 차이는 기왓장이거나 모두 다 懷古의 정을 자아내는 麗代衣冠이 成古丘하든 자취지요.
- 月灘
滿月臺 두고 지은 유명한 시조가 있지 않아요.
오백년 도읍지를 匹馬로 도라드니
山川은 依舊한데 人傑은 간데 없네
어지버 太平煙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 秋湖
그도 좋아요. 六堂도 松都두고 지은 시조가 많았지요. 나도 이 舊宮 옛터에 서매 어쩐지「에레미아」哀歌가 연상되더군요. 오고 가는 바람결에 秋草가 나부끼는 그 정경이며 몇 낮 안되는 楊柳가 선 버들방축이며-四絃琴 소리가 어디선가 들릴 듯 하며 참으로 「에레미아」의 노래를 생각게 합디다.
- 岸曙
나는 처음 松都에 발 들여 善竹橋 보고 차츰 市街를 더 지나 들어 갈 제는 서울 長安만도 못한 布置 좁은 都城이구나 하였더니 滿月臺에 올라서야 비로소 松嶽山도 놓일 테 놓였고 不朝峴 고개도 저만치 물러선 것이 옳게 되었구나 생각되더군요.
滿月臺는 높은 산 등허리에 놓였는데 주춧돌에 잠긴 칡넝쿨 한 가닥도 모두 다 오백년 전에 뿌리를 두었거니 하면 진실로 마음이 설레어 집디다. 지금에 있어 王儉 어른께서 끼쳐 논 麗朝文化야 찾을 길 없지만 이 터전에서 그 面影만은 몽롱하게나마 알려져요.
南漢山城와 統軍亭
- 金東煥
「南漢山城」을 李王職 장관이 가보고 돌아와서 評한 것을 보니 험준한 산악이 겹겹이 싸여 천연의 요새로서 저 旅順의 203高地나 歐洲大戰때 獨逸軍 戰死傷 50만, 佛軍 35만을 내였다는 저 벨단 要塞 같이 아주 훌륭하다더구만. 나도 생각하기에 丙子戰役때에 李朝 군사가 겨우 籠城40일 만에<89> 敗한 것은 軍勢가 약했다기보다 糧道를 끊기어 그랬을 걸요.
- 朴鍾和
그렇지요. 南漢山城은 천연 요새지요, 원래 이 부근에 있는 漢江 北岸의 峨嵯山도 百濟의 要害로서 唐津山城이 예 있든 자리라지요. 南漢山城은 주위 20里 가랑 되는 그 石壁이 좋고 또 그 성낭 우에 2층 다락으로 된 西將臺라거나 天守閣이 모두 다 雲霽에 조사 壯麗無比하지요. 李朝 詩客 洪良浩의 좋은 詩도 있지 않아요. 이 西將臺를 두고서.
千尺層雲廻 曾經百事來
艱危那忍說 鎖鑼愧非才
大野茫茫遠 長江曲曲廻
煍然撫孤杖 斜日獨徘徊
- 春城
史記를 보면 百濟 高溫祚께서 여기 都邑 하셨던 듯도 하더군요. 慰禮城 있던 자리가 南漢山城이라고도 하여요.
- 秋湖
그럴 걸요. 2천년 전에는 서울 이북엔 樂浪을 정복한 高句麗가 있었고, 서울 東南으로는 盛唐과 국교를 맺었던 新羅가 버티어 있고 그러고 서울 南西에는 문화의 나라 百濟가 있었으니까 扶餘나 南漢山城이나 모두 그 都邑이였을 듯해요.
- 金東煥
지금은 어떤가요.
- 岸曙
예전에는 여기에 留守나 府史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面所와 小學校가 있는 300여 戶 사는 촌락이 되였더군요. 어쨋던 이 城을 보고 柳成龍 그 분도, 溫朝城堞云云이 라고 읊지 않았어요.
- 月灘
그 언젠가 달밤에 올라보았더니 이 城樓 지키면서 여러 사람이 노래를 부르든 모양이며 싸움에는 졌으면서 義에 殉하든 三學士의 모양이 눈앞에 보이는 듯, 더구나 籠城 45일 만에 和戰論이 이기어, 仁祖께서 城門을 여시고 三田渡에 이르러 淸太宗과 和議하든 때의 모양을 생각하면 옷깃이 바로 잡혀지더군요.
- 岸曙
그뿐더러 아주 勝景處얘요. 春風秋雨 3백년에 樓臺, 城壁이 반나마 壞損되였지만 往時를 생각하게 하더군요. 南漢山城은 海拔 450米라니 좀 높으니까.
- 파인
義州 統軍亭이 鴨綠江을 앞에 바라서 강변에 선 것이 그 氣宇-심히 높다고 들었는데 더러 가보섰어요.<90>
- 月灘
나는 가보지는 못했지만 統軍亭을 두고 豪俠한 민요가 있지 않읍니까. 저
붙는다 붙는다
義州 統軍亭에
불이 붙는다.
하고요. 좋아요. 어쩐지 무릎을 툭 치고 北風에 胡地를 향해 長嘯하고 싶은 노래지요. 어릴 적에 이 소리 한번 들은 뒤로 꼭 가본다는 것이 아직 못 갔어요. 湖岩 文一平씨 아마 義州가 그 고향이지.
- 秋湖-
軍亭은 威化島 때문에 그 勝景이 놉지요. 威化島란 遼東 벌판 치기로 朝命을 받들고 가던 李成桂 어른이 여기서 回軍했던 역사적인 곳이 아닙니까. 년 전에 가보았더니 그 때 그 5백 년 전 그 시절에 말을 쉬이고 北伐軍을 敎練하던 그 넓은 터전에 지금은 洞里마을이 들어 앉았더군요. 統軍亭에 올라서 이 威化島 바라보며 발아래 흐르는 양양한 鴨綠江을 想望하면 丈夫 소리치기도 싶은 豪壯한 곳이지요.
- 月灘
威化島라고 平壤 綾羅島만치나 큰가요.
- 岸曙
훨신 더 크지요. 여러 갑절 될걸요. 遼東벌판 바라보는 데는 이 統軍亭이 勝地지요.
秋湖-統軍亭도 좋거니와 安州 淸川江邊에 있는 百祥樓도 참으로 좋습디다. 그 맑은 淸川江물이 굽이쳐 흐르는데 三山半落靑天外 한 듯 百祥樓가 구름 속에 우뚝 솟은 것이 詩客이 詩筆들만 합디다. 나는 「靑春曲」이라는 장편소설 첫머리에 百祚樓를 배경으로 하고 써 보았지만.
- 春城
百祥樓도 좋습디다마는 年前에 關東八景 중의 하나인 三陟 竹西樓를 찾아가 보았는데 東海 바다가 좀 멀리 떨어져 있어 그렇지 그 山水의 배경이 참 좋았고 流雅안 古風 맛이 도는 竹西樓 건물도 좋았어요. 江原道같이 산 첩첩한 벽지에 이 竹西樓가 있는 것은 참으로 그 配布를 잘 생각하고 옛 어른이 지었더군요.
風流郞과 俠妓, 義妓
- 파인
이만하면 팔도산수를 두루 보았으니 이제는 인물에 옮깁시다. 여러 천년 간의 역사적으로 보아서 이 땅의 俠妓, 名妓라거나 名流女人 세 분쯤 들자면<91>누구누구 될까요?
- 月灘
첫재 黃眞伊지 朴淵瀑布 泛射亭 옛터에서 碧溪水란, 城主인 豪俠男兒를 홀리고자 絶唱 부른 것 있지 않아요.
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一到滄*하면 다시 오기 어러우니
明月이 滿空하니 쉬어간들 엇더리
黃眞伊는 李泰俊군도 소설로 쓰고 나도 쓴 일이 있지만 인물 잘나고 歌舞 잘하고 거문고 잘 타고, 그러고서 높은 뜻 굿은 절개 있어 가슴의 정열을 늘 붓끝에 올려 시조를 지어내었지요. 여러 百首가 있음직도 한데 지금 남은 것이야 歌曲篇에 數三首가 있든가요.
- 岸曙
그렇지. 黃眞伊야 풍류를 알고 문학을 아는 俠妓였지요. 黃眞伊도 좋지만 平壤에 桂月香도 이름이 있었으나 문학적으로 남긴 것이 없었고 이렇게 史上의 저명한 風流俠妓를 찾으면 黃眞伊 다음에는 芙蓉이를 쳐야하겠지 그도 盛唐 때 薜濤나 杜秋娘 모양으로 흥에 못 이겨 지어놓은 名詩 佳句가 많았을 터이나 지금에 남은 것이야 몇 편 되어야지요. 그러나 우리들의 눈에 띄어지는 저
別하니
思慕한다
에서부터 시작된 19절의 戀歌는 참으로 놀라운 才華가 보이는 것이었지. 그만치 노래에 능하고 정열에 放奔할제야 그가 그 당대에서야 얼마나 盛名을 날렸을런지 상상할 수 있지요.희랍의 삽포-같은 여성이었지요. 盛唐시대의 卓文君 같은 이였다 할까요.
- 秋湖
芙蓉의 相思詩 19절은 참으로 絶唱이더군. 지금의 여류시인 중에 그런 노래 지을 분이 있을까. 아무튼 놀라운 才女더군요.
- 春城
歌舞를 잘한대야 그도 1,2世에 그치고 더구나 꽃 같은 얼굴이라도 2,30년을 못 가려든, 결국 역사적으로 길게 사는 이는 우리 보기에는 문학적 유산을 남기는 이들인데 그렇다면 史上에 빛나는 여류작가로 許蘭雪을 쳐야할 걸요. 그의 시조야 좀 많습니까. 또 점잖고 향기 있고 참으로 높이 평가할 분이지요.
- 파인
그렇지요. 許蘭雪이지요. 그도 우리 문학 사상에<92> 높은 지위를 가진 분이니까. 그러면 여러분의 말씀을 좇아 史上의 俠妓나 名流女人을 들자면 黃眞伊, 芙蓉, 許蘭雪 이러 하군요. 이 세 분 고른 것을 한 큰, 역사적 기록으로 삼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다시 남성 속에서 마찬가지 의미로 豪俠하고 풍류를 즐기든 快男兒 세 분씩 들어봅시다.
- 田榮澤
金笠이지. 飄逸하며 神韻이 도는 片片詩歌를 街衢에 흘리고 다녔으나 그 감가 不遇한 一代가 사람의 가슴을 쳐요.
- 朴鍾和
그렇지요. 金笠을 쳐야지요. 金笠은 원래 金炳淵이 본명이여서 저 世道宰相 金炳學 金炳冀가 모두 그 친척이었는데 士禍로 모두 다 五族이 멸할 때에 오직 저만 살아-市井에 유랑하며 그 감개를 읊었지. 허잘 것 없는 사람 집에도 즐겨 門客되어 문간에 신짝을 벗기는 하면서도 늘 慨世의 일념이 시와 노래가 되어 흘렀지요.
- 盧子泳
豪俠男兒라면 첫째 저 新羅時節 화랑들 무리에 눈이 가지는데-史上에는 화랑이란 제도가 있어-金瘐信도 화랑출신이요. 그 당시 世道宰相과 武士가 모다 화랑이라 하였을 뿐으로 그 중에 누구 한 두 사람 여자에 黃眞伊같이 치켜 올릴 사람이 없는 것이 슬퍼요. 그러기에 화랑에선 意中의 사내를 찾을 길 없으니 결국 鄭壽銅같은 이를 諧譃詩人으로 끄집어내어야겠지요. 鄭壽銅의 爲人과 遺跡은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일이기 더 말치 않지마는-.
- 金億
그렇지요. 朴文秀와 鄭壽銅을 생각할 수 있는데 鄭壽銅이 一代 풍류객이었지. 그러고는 楊處士, 楊逢來일걸. 그 높은 절개와 그 仙風道骨같은 용모와 그의 후세에 끼친 글과... 洛山 三日浦에 같더니 거기 梁逢來 노닐던 터가 있더군요. 조선 향토정서에 어울리는 史上에 둘도 없는 선비였지요.
- 金東煥
그렇겠어요. 나도 三日浦 놀이할 적에 뱃사공에게서 자세히 듣고 山上에 올라 그 유적까지 찾은 적이 있지요.
그러면 史上에 남는 豪俠男兒와 풍류 아는 선비 세 분을 꼽자면 金笠, 楊逢來, 鄭壽銅 이겠군요. 그렇게 정하기로 합시다. 자아, 이만하면 이 산천의 향기를 흠씬 마신 셈이니 이 자리를 일단 이에 끝이기로 하겠습니다. (끝)<93>
잡지명 삼천리 제11권 제4호
발행년월일 1939년 04월 01일
기사제목 「半島山河」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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