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高麗王朝)는 근친(近親)의 장(場)
태조 왕건은 삼국을 통일하는데 무력 대신 화친을 앞세우면서 나아갔다.
신라 말 중앙정부가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각처에서 호족들이 득세하여 지방권력을 잡자, 왕건은 지방호족과 결혼을 함으로서 그 지역을 점령하였고, 이것이 계속되자 마침내 통일이 될 때까지 28명이란 부인을 두게끔 이르게 되었다
하나, 태조 왕건이 죽자 사태는 심각하게 되었다. 부인이 모두 28명으로 그 자식 또한 많아 왕의 후계 구도를 두고 심각한 사태에 이르게 되었으며, 해서 왕족끼리 근친결혼으로 왕권을 다지기 위하여 친족끼리 결혼하는 것은 예사로 행하였다.
역사를 보면, 고려2대 혜종서부터 8대 현종까지는 왕족끼리 결혼을 하게 된다. 2대 혜종은 첫째 왕후로 누나를 비로 맞았으며, 4대 광종의 비는 경화궁 부인인 임씨인데 이 역시 조카와 결혼하게 된다.
* 고려시대는 왕비도 재혼을 하였다.
성종의 왕비 문덕왕후도 다른 종친과 결혼한 여자였으나 성종과 재혼을 한다. 충숙왕의 비 수비 권씨도 재혼을 하게 된다. 더욱이 놀란 것은 충렬왕의 후궁 숙창원비는 과부로 있다가 충렬왕이 죽고 아들 충선왕이 임금에 오르자 아버지의 후궁을 자신의 후궁으로 삼을 정도였다.
KBS에서 방영중인 천추태후 자매도 제5대 경종의 비로 들어가게 되며, 경종과 헌애. 헌정 남매는 왕건의 손자와 손녀사이이다. 경종은 당시 부인을 2명을 두었으나 천추태후 남매와 더불어 총 5명의 부인을 두게 되지만 아들은 3대인 천추태후만이 갖게 된다.
천추태후(헌애왕후)는 황해도 황주를 근거지로 황보씨 집안으로 대종옥의 딸로 태어났다.
하지만 고려4대 광종 시절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한 호족제거에 방침에 따라 집안이 숙청을 당한일이 있었다. 경종이 갑자기 죽자 천추태후인 헌애왕후와 동생 헌정왕후는 홀몸이 되어버린다. 헌애왕후의 아들이 2살 때였다. 곧이어 헌애왕후는 친척인 중인 김치양과 간통하고 동생 헌정왕후도 작은아버지인 왕규와 밀애를 하다가 아들을 낳게 된다. (나중에 8대현종)
거란의 1차 침공시절 천추태후가 안융진싸움에서 참전했는지는 역사에 없으나, 거란은 유목민으로 들판에서는 기마병으로 연전연승을 하지만 고려의 안융진성은 산악지대라 고전을 면치 못하고 발해의 유민들과 고려의 장수들이 연합을 하여 거란군을 곤경에 빠뜨린다.
오빠인 성종이 고려6대 임금으로 나라를 통치하였고 16년 동안 국가를 위해 공헌하다가 36세인 서기 997년에 세상을 뜨게 되자 마침내 헌애왕후에게는 뜻밖에 기회가 돌아온다.
아들이 18세에 7대 목종으로 왕위에 오르지만 정치에 욕심이 많은 헌애왕후는 직접 섭정을 단행한다. 그리고 간통한 김치양을 조정으로 불러들인다.
김치양은 황해도 동주 출신으로 궁으로 다시 돌아오자 천추궁을 아름답게 꾸미며 새로이 300여 칸의 집을 짓고 연못을 파며 호화롭게 살았으며 천추태후는 이어 김치양에게 조정에 인사권과 재정권도 부여한다. 이렇게 고려는 사촌 관계에서 부터 친족 간의 결혼은 물론 여성에게도 남성과 같은 호주제도 갖게 한 것으로 보인다.
천추태후에 대해서 끝은 맺자면 천추태후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다가 서북면도순사 강조장군에 의해 김치양과 왕규는 죽음을 맞고 천추궁에서 쫓겨난 천추태후는 섬으로 유배되었다가 황주로 내려가 쓸쓸한 최후를 맞는다. 동생인 현정왕후는 집으로 돌아오다가 집안의 나무아래서 아기를 낳고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 아기가 후에 강조장군의 의해 고려8대 현종이 된다.
천추태후가 중인 김치양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임금의 자리에 앉히려 한 것을 보면 불륜이며 역적으로서 마땅히 징계해야 하며, 여기에 고려의 충신인 강조가 5천의 군사로 왕궁으로 진입 당시 임금이던 목종까지 내쫓고 천추태후의 정권도 끝을 맺게 된다.
천추태후는 역사에 나타난 인물은 아니지만 야사 등에서 소설. 또는 신문연재소설로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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