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中區) 초동(草洞)
조선조 사병일으킨 방원
부왕(父王)군사에 맞서 첫 전투한 곳이 초전(初戰)골
이후 동음(同音)인 초(草)로 바뀌어 중구 초동(草洞)
발행일 : 1997.09.08 / 기고자 : 방준식 고정물 : 뿌리를 찾아서
중구 초동(草洞)의 옛 이름은 초전(初戰)골이다.「초(初)」가 음이 같은「초(草)」로 바뀐 것이다.
1398년(태조 7년) 8월, 시가전이 벌어졌다. 아버지 태조를 도와 조선조 창업에 많은 공을 세웠던 다섯째 아들 방원은 태조가 계비 강씨 소생의 방석을 세자로 삼은데 불만을 품고 사병을 일으켰다. 방원이 방석과 개국공신 정도전 등을 죽이자, 태조는 주먹으로 용상을 치면서 진노했다. 태조는 당장 군사를 보내 방원을 치게 했다. 그러나 방원은 차마 부왕(부왕)의 군사에 맞서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광화문에서부터 점점 쫓겨 도망했지만 더 이상은 물러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스카라극장이 있는 거리에서 태조의 군사를 맞아 첫 싸움을 했다. 그래서 초전골로 이름 붙여졌다. 이 싸움은 접전을 계속하다가, 지금의 을지로2가에서 옛 파라마운트극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결전을 치러 방원이 태조의 군사를 물리쳤다. 그래서 그곳에는 대전병문(대전병문)이란 땅이름이 생겼다.
초동은 예전의 이곳이 풀밭이 아니었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고층빌딩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고, 특히 극장가로 알려진 곳이다. < 방준식기자/조선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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