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고발한다, 법조계를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 민사소송 80% '나홀로' 전관예우(前官禮遇) 악용한 돈 많은 악당들은 무죄
'진보' 자처 법조인까지 기득권에 안주하는 이 나라는 공정사회(公正社會)인가
이용훈 대법원장은 5년간 60억원, 소위 '진보' 법조인의 표상이라는 박시환 대법관은 22개월간 19억5800만원, 정동기 전 감사원장 후보자는 7개월간 7억원. 이 금액은 이들이 공직(公職)을 잠시 쉬는 동안 변호사를 하며 벌었다고 신고한 '공식적' 수입이다. 하지만 수임료를 축소 신고하고 성공 보수나 비공식 착수금 등은 아예 신고조차 않는 우리 법조계의 관행으로 볼 때 이들의 '실제' 수입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은 낙마한 정 전 후보자의 높은 수입이 '공정한 사회'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봤던 것 같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 역시 "대검차장 정도 하다가 나가면 월 1억원씩 받는 것이 법조계의 현실"이라며 정 전 후보자를 두둔했다. 이 대통령과 천 최고위원의 이런 현실 인식은 과연 '공정(公正)'할까? 아니다. 진입 장벽(barriers to entry)과 전관예우(前官禮遇)가 아니었다면 그들이 결코 그런 큰돈을 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먼저 사법시험이라는 진입 장벽부터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응시하는 사시(司試)지만 합격률은 고작 3% 내외다. 높디높은 진입 장벽이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도입으로 진입 장벽이 약간 낮아지긴 했지만 변호사 되기란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다.
경제학에서는 진입 장벽 때문에 증가한 수입을 '지대(rent)'라고 정의한다. 숙명여대 경제학과 신도철 교수는 이 지대를 계산하기 위해 한국 변호사의 '공식적' 수입과 진입 장벽이 낮은 미국 변호사의 '실제' 수입을 각 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눠 비교해봤다. 그랬더니 한국 변호사 수입이 미국에 비해 3.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엄청난 규모의 지대다. 만약 한국 변호사 역시 축소 신고된 공식적 수입 대신 실제 수입을 사용해 비교할 수 있었다면 이 지대는 훨씬 더 높게 나타났을 것이다.
높은 지대는 곧 비싼 변호사비를 의미한다. 동국대 법대 김도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민사소송 당사자의 약 80%는 비싼 변호사비를 댈 수 없어 '나 홀로 소송'을 한다. 억울한 일을 당한 서민 대다수가 변호사로부터 최소한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이런 불공정한 사회에서 누가 뻔뻔하게 '친(親)서민 공정사회'를 들먹이는가. 이를 해결하려면 매년 최소 3000명 이상의 신규 변호사 충원이 필요하다고 신도철 교수는 주장한다.
사법연수원 수료식이 열리는 1∼2월이 되면 각 언론은 연수원 졸업생의 미취업률이 40%대라고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구회근 전 사법연수원 기획교수는 매년 5월 정도가 되면 미취업자가 거의 해소된다고 말한다.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법조계에 '포획'돼 그들의 엄살에 동조하며 진입 장벽을 옹호하는 일부 법조계 출입기자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다음으로 한국만의 악습(惡習)인 전관예우를 살펴보자. 전관예우란 판·검사가 현직을 떠난 뒤 맡는 사건에 대해 후배 판·검사가 양형(量刑)이나 기소 등을 유리하게 봐주는 것을 말한다. 고액의 연봉으로 고위직 전관을 영입한 대형 로펌(법무법인)의 형사사건 무죄율은 일반 형사사건 무죄율보다 10여배나 높다. 주로 돈 많은 악당들이 이를 악용하고 있으니 전관예우란 결국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를 부르는 범죄적 제도다.
정종섭 서울대 법대 학장은 "한국의 형사재판은 자의적인 증거 판단과 양형 결정, 전관예우 등으로 만신창이가 됐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황희철 법무부차관은 "전관예우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조 개혁의 주무 부처 차관이 이렇듯 국민을 우롱하는데도 이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주창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나는 '나 홀로 소송'과 전관예우를 바로잡고자 2006년 4월 26일자 한 신문에 '나는 고발한다, 법조계를'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 이후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소위 '진보' 법조인을 자처하는 박시환 대법관이나 천정배 최고위원마저 법조 기득권에 안주하는 이 땅의 현실에 분노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고발한다, 대한민국 법조계를. 그리고 법조계에 포획돼 법조개혁 책무를 망각한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나 홀로 소송에 눈물짓는 서민을 외면하고 '공정한 사회'를 능멸한 죄목(罪目)으로!
입력 : 2011.02.13 / 수정 : 201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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