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운종중/숭조의 바른 자세

효도는 자식이 배운다

hellofine 2011. 6. 17. 14:14

효도는 자식이 배운다

 

먹을거리가 턱없이 모자라 ‘고려장’ 풍습이 있었던 옛날이야기다. 고려장을 하기 위해 아들이 늙은 어미를 지게에 지고 산에 올랐다.

 

노모(老母)와 함께 지게도 산에 버리고 돌아서려는데 이를 지켜보고 있던 어린 아들놈이 그 지게를 가지고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의아하게 여긴 아버지가 이유를 물은 즉 아이의 대답, “이 다음에 아버지가 늙으면 이곳에 와서 버려야 할 텐데 그때 쓰려면 이걸 가져가야 하지 않겠어요?”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늙은 어머니를 다시 모시고 내려와 효도하며 잘 살았다는 얘기다. 일본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늙은 홀아버지와 함께 사는 어느 집안 이야기다.

 

노쇠한 아버지가 노상 접시를 깨뜨리고 음식을 흘리는 바람에 아들은 아버지를 마구간에서 혼자 먹도록 내쫓고, 밥그릇도 냄새 나는 투박한 나무로 만들어 줬다. 어느 날 네 살짜리 아들놈이 커다란 나뭇조각을 갖고 노는 것을 아비가 보고 뭘 하느냐고 물었다. 아이가 대답하기를 “아빠랑 엄마가 늙었을 때 쓸 밥그릇을 만든다”고 했다.

 

어린 아들의 말을 들은 이 남정네는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늙은 아버지를 다시 모시게 됐다. 천대받던 노인은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서 식사를 하며 아들과 손자의 지극한 보살핌 속에서 수(壽)를 다했다고 한다. 효도는 말로 가르쳐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이론 정연한 말씀이나 윤리 교과서에 의해 바른생활을 터득하는 게 아니라 어른들의 행위를 보며 닮아 가는 것이다.

 

 

내가 부모에게 효도하면 자식으로부터 효도를 받을 것이요, 내가 불효하면 자식도 나에게 틀림없이 불효할 것이다. 세상에 이처럼 확실한 인과응보는 없다. 젊은이들이 군에 입대할 때 누구나 부모님을 생각하며 한두 번쯤 눈물을 흘린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 분, 그분들이 그동안 나에게 베푼 무조건적 희생과 무한한 사랑이 가슴에 뭉클 다가오는 순간이다.

 

이 마음을 오래 간직하는 병사는 싹수가 있는 젊은이다. 부모가 군에 간 자식에게 바라는 것은 간단하다. 탈 없이 건강하게 직분에 충실하고, 가끔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는 것으로 만족한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여파로 경제 사정이 말이 아니고 일자리 보장이 어려운 사오정 시대인데, 지난 추석 연휴에는 고향의 부모님을 찾는 귀성 행렬이 고속도로를 메웠다.

 

막히고 짜증나는 긴 시간에 시달리면서도 부모형제를 만나고 조상을 모시는 차례(茶禮)에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여독이 말끔히 풀리는 우리 세시풍습은 귀중한 미풍양속이다. 경제적 손실이라거나 노동력의 낭비라는 견해와는 다른 차원에서 말이다. 천민자본주의가 몰고 온 가족 해체 현상을 바로잡고 경로숭조(敬老崇祖), 즉 노인을 공경하고 조상을 숭상하는 사상을 후대에 물려주는 일은 어느 물질적 가치보다 앞서는 귀중한 유산이다.

 

<정영휘 (예) 육군준장·한국군사평론가협회 부회장 jyh33kr@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