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가위풀이><一年明月今宵多>
명절중에 제일 좋은 명절
달빛에 비친 청상의 눈물
인생(人生)은 짧고 세월(歲月)은 길다. 무궁(無窮)에서 무궁으로 흐르는 밤과 날이니, 그 사이에 구별(區別)도 없고, 토막 지을 필요도 없건마는 기억하기 편리하고 계산하기에 용이 하도록 한 달이니 일 년이니 길고긴 세월가운데 토막을 지어놓고 그래도 무미(無味)하니까 그중에 좋은 날로 명절을 정하여 슬프면 슬픔을 기쁘면 기쁨을 한층 더 통절히 느끼나니,
설의 새로운 맛, 대보름의 부스럼 깨기부터 멱을 감기는 사월파일, 국화 술 빚는 구월 구일, 팥죽을 쑤어먹는 동지(冬至), 일 년의 명절을 헤아리면 명절도 많지마는, 명절 중에서도 제일 좋은 명절은 팔월가위이리라. 사람을 볶는듯하던 더위는 어느 듯 감이 없이 살아지고 소실한 금풍이 시원하고 서늘한 첫 노래를 아뢰며, 일 년의 근고의 보람이 있어 황금 같은 벼이삭은 들가에 디려졌고, 그 이외에도 갖은 과실도 올이 차니 배 철, 능금 철, 밤 철, 대추 철, 감 철도 이철이다. 신곡으로 빚은 술이 독에 무르익자 일 년 중에 가장 맑고 가장 밝은 달조차 하늘에 걸렸으니 시인이 아니고 주객이 아니더라도 도도한 흥을 어찌 감할손가.
무엇으로 보던지 팔월 보름이야말로 명절중에 제일 좋은 명절이다. 그런데 이 좋은 명절은 언제부터 생겼는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상고하면 가위는 신라(新羅)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니 시골 농가에서는 일 년 중에 가장 소중한 명절로 알아 새로운 곡식으로 흰 술을 빚고 누런 닭을 잡아 온 이웃이 모여 배부르고 취하도록 먹으며 즐긴다 하였으며, 또 신라 유리왕(儒理王)때에 서울 안을 두 편으로 갈라서 두 공주로 하여금 각각 한편씩 거느리고 추칠월 그믐날부터 삼을 짰다가 가을에 그 성적을 보아서 지는 편이 술과 음식으로 이긴 편에 사례하는 법도 있었다.
제주(濟州)에서는 이날에 남녀의 구별 없이 하나로 뒤섞여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며 신나게 놀다가 좌우편을 갈라서 줄을 당기며 줄이 툭 터져서 좌우편이 모두 땅에 업어지면 포복절도들을 하고 또 그네도 뛰며 닭 잡는 놀이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호랑이 담배 피울 적 이야기요, 요사이 서울에는 가위라고 이렇다 하는 놀이가 없다.
집집이 먼저 간이들의 다례나 지낼 뿐, 이외에 하는 일이 있다면 차디찬 흙속에 길이 잠든 이를 방문하는 것이리라. 이태원, 수험리 등의 공동묘지 터엔 흰옷, 푸른 옷, 붉은 옷이 휘날리며 어버이를 찾는 애처로운 울음, 남편을 부르짖는 애 끓이는 울음, 내 앞서 왜 갔느냐고 땅을 치며 자식 잃은 탄식,..... 중추(仲秋)의 맑은 공기는 눈물에 젓고 슬픔에 껄떡인다.
어제같이 초록이 덮는 듯이 무성하던 풀이 가을빛을 띄고 시들시들한 모양을 어루만질 때 사랑하는 이를 잃고 홀로 남은 고적 과부 애가 새롭다고 할 것이다. 누가 가을의 정경은 발갛게 익은 감(柿)이 조롱조롱 열린 감나무를 보는데 있다느냐, 온종일 가을 잔디만 어루만지며 돌아서는 젊은 과부의 눈물 묻은 속눈썹에 교교한 달빛이 은으로 번뜩이는 것이야 말로 구슬픈 가을 정경의 모든 것이리라. 아 아! 인생은 짧고 세월은 길다.
<1924년 9월 13일 시대일보 기사 중에서>